Hyongryol Bak: Views Beyond Utility by Alasdair Foster 2023 전시리뷰(월간미술2022년07월호-CRITIC) 박형렬 땅,사람,관계탐구-정희라(독립큐레이터)2022-정희라(독립큐레이터) 생각해 보건대, 우린 단 한 번도자연에게 당신 생각을 물어본 적이 없다. 그래도 되는지를 -작가의 노트 中 박형렬은 땅과 대화하듯 작업하며, 이 과정에서 미학적인 조형성을 포착하여 인간과 자연의 구조를 간접적으로 건드린다. 자연을 소유하는 폭력적인 사회의 모습을 감각적으로 사진과 영상으로 담아내고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땅 혹은 풍경화 되기 직전의 땅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는 도시에 살면서 소유할 수 없는 것을 소유하려는 사회의 면면에 관심을 가지고 다큐멘터리적 작업을 이어왔다. 그는 우리 삶에서 동떨어진 대자연보다 일상과 밀접한 도시 근교의 땅들을 보았고 그 땅들이 이해로 얽혀 새로운 가치를 얻게 되는 동시에 원래의 모습을 상실하는 순간들도 지켜봐 왔다. 박형렬은 그 모습들을 기록하고 형상화하는 지점을 고민하며 매체의 형식과 시각적 구성을 연구한다. ‘성곡 내일의 작가’ 전시 <땅, 사람, 관계탐구 Reflecting on Relationship: Earth & People>는 박형렬이 사진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매체를 통해 자연과인간의 관계를 다룬 지난 10여년 간의 작업을 조명하였다. 2010년부터 진행했던 <포획된 자연Captured Nature>은 이번 전시의 시작점으로 볼 수 있다. 이 연작은 비닐과 실, 아크릴과 같은 산업적인 물질로 자연을 포획하고자 하는 시도를 설치와 퍼포먼스로 형상화하고 사진으로 기록한 작업이다. ‘포획/캡쳐한다’라는 말은 살아있는 생명을 포획하는 행위와 인터넷상에서 무자비하게 자기 소유로 끌고 오는 캡쳐하는 행위를 떠올리게 한다. 연작 중 하나인 <포획된 자연_나무#4>는 가느다란 나무를 차지하기 위해 퍼포머 두 명이 나무를 감은 흰색 실과 검은색 실을 양쪽에서 팽팽하게 당기고 있는 모습을 담았 다. 이러한 행위는 소유를 시도하는 모습을 의미하며 자연을 포획하겠다는 어리석은 포부를 내비친다. 박형렬은 이 같은 개념적 행위를 보여주는 데 있어 실, 천과 같은 도구 그리고 퍼포머들의 의상이나 그들의 움직임이 조형적으로 어울리도록 하였다. 사진의 특성이라 해도 그의 작업은 조형적 구성과 미적 관점이 돋보인다. 2013년부터 지속된 <형상연구Figure Project>는 자연의 조형성 특히 땅의 모습에 주목한다. 상태와 조건에 따라 달라지는 자연의 모양과 땅의 성질이 소재가 되어 인간과의 접점을 나타내고자 다양한 방식을 실험해왔다. 예컨대, 2018년도 작품 <형상연구_땅#75-2(북위 37°11'34.2, 동경 126°39'37.3의 돌의 균열으로부터)>는 <북위 37°11'34.2, 동경 126°39'37.3의 돌>의 작업이 선제된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간척지에서 발견한 쪼개진 돌을 먼저 사진으로 기록하고 <형상 연구_땅#75>에서 퍼포머들이 땅 위에서 그 돌의 쪼개진 틈새 모양을 재현한다. 결과물인 사진은 퍼포머들의 의상 색과 흙의 색이 대비되고, 광활하게 펼쳐진 땅과 조그마하게 보이는 사람들의 이어진 모습이 추상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처럼 박형렬의 사진과 영상 작업은 때로 규모가 큰 퍼포먼스에 기반을 두기도 하는데, 작업을 위한 설치과정도 퍼포먼스 못지않게 스펙타클하다. 이 과정에서 인간과 자연 사이의 지배적 구조가 아닌 수평적인 관계가 발생하는 지점들을 찾고 경험한다. 작업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바닷물과 비라도 만나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박형렬은 이런 자연의 순간들을 맞이하며 땅과 자연을 몸소 느꼈을 것이다. 2013년 작 <땅과 땅 Earth and Land> 영상 작업에서는 그가 음각으로 조각한 땅 안에 첼로를 켜는 음악가가 등장하여 연주를 시작한다. 비로소 첼로의 소리가 땅의 울림처럼 어우러져 자연과 나누는 교감의 순간이 이루어진다. 미술 작가, 작곡가, 첼리스트 그리고 자연이 함께함으로 땅 안에서, 땅 위에서 작업하며 겪은 그의 내밀한 체험이 협업자들과 공유되며 확장되어 갔다. 박형렬은 간척지 작업을 하면서, 주변의 산들에도 눈길이 갔다. 저 산의 형태는 어떨까 하는 생각에 위성사진을 찾아보았고 산이 댕강 잘린 형태들을 마주했다. 그에게 잘려져 있는 산은 징그러울 정도로 폭력적인 동시에 감각적으로 느껴졌다. 이러한 이중성이야말로 ‘소비되는 자연의 모습’이라는 생각에 잘린 산의 단면들을 형태만 분리하고 흙의 색들을 단순화시켰다. 이를 아크릴 작품으로 표상화한 것이 이번 전시에서 새로이 선보인 <산의 단면프로젝트A Cross Section of a Mountain Project>이다. 이와 함께 <백색 소음 행위White Noise Gesture>는 당진에 있는 간척지에서 작업하였다. 이 작품은 흰 천으로 땅을 덮어가는 과정을 영상으로 보여준다. 하늘에서 바라본 거대한 천의 느린 움직임은 폭력적인 인간의 행위를 지우는 치유의 퍼포먼스로 보이기도 하면서 이제는 곧 사라질 땅임을 강조하고 인간이 풍경을 정비함을 깨우치게 한다. 위에서 내려다본 자연의 모습은 크레인과 드론과 같은 장비를 동원하여 촬영된다. 실제 대상의 규모를 짐작할 수 없는 땅의 모습들은 카메라를 통한 세계가 눈으로 보는 세계와 다르며 실제가 왜곡될 수도 있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대상과의 거리를 조절하고 화각을 이용하여 구도를 만들고 빛과 같은 촬영의 조건을 건드려 음각으로 조각한 땅이 양각처럼 보일 수도 있게끔 효과를 넣기도 한다. 실제와 작업 결과물 속 대상의 규모와 성질이 상이해 보이도록 유도 하는 것은 자연과 인간 간의 거리와 관계가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것과 다를 수 있음을 드러낸다. 박형렬은 자연의 모습을 탐구하고 땅과 인간과의 관계를 폭로하는 데 있어 사진이라는 매체가 가지는 특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무엇보다 그의 작업을 통틀어 가장 중요한 룰은 자연 공간에 개입했던 자신의 흔적을 지우는것이다. 규격화되고 기하학적인 도시 구조와 산업적인 이해관계를 은유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가했던 최소한의 변형이었다. 그 물리적인 조건을 원래의 모습으로 복구시킨다. 이러한 행위는 자연을 억압된 조건에서 벗어나게 하는 의미로 해석되는 한편, 어떤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의 시도에 ‘헛된’ 혹은 ‘덧없는’과 같은 표현이 따라붙기도 한다. 작가의 개입을그대로 두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하는 과정을 기록하는 일부 대지미술과는 다르다. 박형렬의 작업은 서로 어울려 작업하고 본래의 모습을 존중하여 되돌리는 모습이 자연과 인간이라는 이름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하나의 존재와 존재의 만남으로 비추어진다. -구나연(미술비평가) -무한의 상호성, 그 지속에의 탐구 박형렬은 십여 년 간 사진을 통해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 탐구해 온 작가이다. 근대 이후 지금까지, 인간에게 자연은 물리적 객체로 존재해 왔다. 인간과 자연이라는 이분법의 구도 속에서, 자연의 본래적 힘은 간과되어 인간에 귀속된 환경이자 도구로 대상화되었다. 박형렬은 이에 대해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서 볼 수 있는 지배적이고 수직적인 관계”를 사유하고 , 그 근본적 문제의식과 반성적 태도를 드러낸다. 그리고 그간의 작업을 망라한 전시가 성곡미술관에서 《땅, 사람, 관계탐구》라는 제목으로 열렸다.이번 전시는 ‘관계 탐구’라는 제목처럼, 자연과 인간 사이의 관계에 대한 박형렬의 꾸준한 고찰의 결과물이다. 그것은 카메라의 중립적 시선 하에서, 때로 대결로, 긴장으로, 또한 파열로 나타나는 인간과 자연 사이의 치열한 관성을 담는다. 그가 자신의 작업을 "자연 공간에 변형을 가"하는 "폭력적 징후"와 이를 “실제 자연 공간에서 은유적으로 재구성하고 시각화 하는 작업”이라고 설명했듯 , 그의 작업은 작가의 지속적인 경험과 관찰을 통한 발견이자 전개로 볼 수 있다. 그리고 그가 펼친 작품들을 크게 네 가지의 테마로 구분하면, <포획된 자연>, <형상연구>를 비롯, 좌표를 통한 기록, 그리고 <백색소음 행위>로 대표되는 영상 작업일 것이다. 각기 다른 접근 방식과 실험의 결과인 이 테마들은 인간과 자연의 관계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바탕으로 구축되어 있으며, 경험적 사유에서 파생된 메타포를 통해 움직인다. 먼저 <포획된 자연>은 그 제목이 암시하는 것처럼, 자연에 대한 인간의 역설적 행위를 설정하고 이를 상징적으로 가시화한다. 예컨대 <포획된 자연_나무 #4>의 경우, 중심에 놓인 앙상한 나무 한 그루에 묶인 여러 개의 끈을 두 사람이 겨루듯 당기고 있다. 수직-수평의 명료한 구도 속에서 당기는 힘의 방향에 따라 팽팽히 대결하고 있는 이 상태는 인간에 의해 변형되는 자연의 모습과 그 무모를 보여준다. 여기에는 ‘대결’만 있을 뿐, 그 어떤 것도 포획될 수 없는 잠정적 힘의 대칭이 존재한다. 자연 풍경의 거대한 직교 가운데에 놓인 인간의 틀은 결국 인간 사이에서 일어나는 대립적 상태일 뿐이며, 오히려 부동하는 자연의 견고함을 부각시킨다. 이 같은 대비는 <포획된 자연_바다#2>에서도 나타난다. 병렬된 정사각형의 아크릴 판이 늘어선 해변 맨 앞에 한 인물이 바다에 서 있다. 흰색 계열로 펼쳐진 해변의 색감 가운데 인공의 아크릴판과 그 원색적 투명함은 분명한 대비를 이룬다. 수평선을 향해 뻗어가는 기하학의 규칙적 행렬은 풍경의 색을 투과하면서 원근법적으로 전진하고, 그 소실점의 중심에 자리한 인간은 바다의 색을 바꾸어 소유하려는 듯 노란색 아크릴 판을 들고 있다. 부드러운 모래와 물결 위에 공격적으로 자리한 색채의 포획은 이미지의 시각적 변화를 이끌 뿐, 자연이란 객체의 변화로 이어질 수 없다. 즉 <포획된 자연> 시리즈는 자연에 작은 개입들을 설정하고, 그것이 견인하는 어떤 상징적 의미와 마주하게 만드는데, 그것은 완고한 자연의 침묵이자 생명력이다. 그리고 박형렬의 작업은 자연의 야생적 존재 방식을 사진으로 포획하여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정반대인, 자연에 침투한 인간의 작은 상황을 통해 포획 불가능한 자연의 경이를 드러낸다. 요컨대 박형렬의 작업은 한 사람의 신체가 수용하는 자연의 변화가 어떤 생동(vitality)의 상호성에 기인하고 있음을 제안한다. 이에 따라 <형상연구> 시리즈를 통한 파괴와 복구는 결코 유적을 남기지 않는 인간의 흔적을 구현한다. 그는 <형상연구_물#3>에서 크기도 깊이도 알 수 없는 물의 한가운데에 잠시 균열을 내고 형상을 개입시킨다. 그가 만든 틈은 날 선 칼로 도려낸 것처럼 베어져, 이를 통해 수면 아래 존재하던 진 땅이 드러난다. 그 형상은 인간의 근대적 행위가 갖는 수리적 개입, 그리고 자연을 타자화 해 온 태도를 명료히 함축하며 물을 가르고 있다. 이러한 ‘형상 연구’는 인공적 형상과 자연의 형태를 동시에 아우르며 그 대립적 양태를 가시화 한다. 그리고 이것은 직각의 조망적 시선으로 나타나는데, 박형렬이 구사하는 렌즈의 시점은 인간의 눈이 아닌 렌즈의 관점이며, 이를 통해 대상이 가진 본래의 스케일을 무화시키고 객관화 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기실 박형렬의 작업에서 스케일의 무화는 렌즈의 시선이 갖는 힘과 깊이 연관된다. <형상연구_땅#72>의 경우, 조망의 구도는 인공적 도시의 패턴과 땅의 토질 사이의 유비를 극단적 부감으로 언급한다. 여기에서 렌즈는 인공과 자연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바라봄’이라는 역할을 냉정히 수행한다. 이 객관적 기록의 시점은 우리가 목도하는 그의 사진이 자연과 인간의 완력적 관계를 화면의 긴장으로 옮기고, 셔터의 전과 후를 동시에 포용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이를 통해, 카메라의 관점으로 인간화 된 윤리 개념을 증발시키면서도, 애도의 정서가 아닌 경험적 성찰에 접근하게 만든다. 개발을 목표로 사라진 자연에 대한 일방적 변화와 그 상흔을 형상으로 기록한 <산의 단면> 시리즈는 간척 사업으로 통째 사라진 수많은 산들의 등고선을 위성 사진으로 리서치하고, 그 수평적 단면을 간척지 표면에 음각한다. 그렇게 박형렬의 작업에서 좌표로만 남은 산의 존재는 익명적 땅의 표면 위에 형상으로 복구된다. 그리고 그 단면은 인간의 계측적 가치 판단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물질적 신체로 다가온다. 일방적 파괴로 인해 지속성을 박탈당한 자연의 존재가 탈영토화된 상태로 회복되어 사진적 현존으로 남는 것이다. 이처럼 그의 사진은 길고 복잡한 제작 과정을 거치면서, 파괴된 인간의 자연을 본래적 비인간의 자연으로 환원시킨다. 즉 그의 사진은 결과이기 보다 과정이며, 찰나이기 보다 운동하는 회복이다. 이 점에서 이번 전시의 영상 작업들은 그 과정과 환원에 대한 서사를 전개한 것이다. 3채널 영상인 <백색 소음 행위>는 인공의 건축물로 효율의 장소가 될 당진 석문 간척지 위에서 진행된다. 인간의 일방적 객체로 점유될 그 땅의 풍경은, 극단적 부감과 앙감, 거기에 빠른 속도감 등의 카메라 워크를 통해 그려진다. 척박한 땅의 현재와 피어 오르는 구름의 습기가 공존하는 존재론적 조화는 거대한 것과 쇄말한 것이 간극 없이 맞물려 운동하는 자연의 투명한 호흡을 보여준다. 그리고 점처럼 하얗게 침범한 인간의 불투명한 장막이 모든 것을 덮으며 나타난다. 하지만 이 흰 장막은 자연의 장대함 앞에 이내 크기를 상실하게 되는데, 종국엔 <포획된 자연>에서와 같이 결코 소유할 수 없는 자연의 양태를 역설한다. 특히 영상에 등장하는 흰색 인물들은 박형렬은 자연에 대해 “겉으로는 물질적인 요소로만 보이지만, 자연의 모든 요소들이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고 말하고, “계속적으로 변화하는 동시대 자연과 인간의 구조들을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경험하면서” 작업한다고 설명한다. 제인 베넷(Jane Benette)은 스피노자의 정동적 신체를 들뢰즈가 행위하는 힘과 행위를 견뎌내는 힘으로 구분하여 “그것의 합은 일정하고 동시에 끊임없이 유효하다”라고 한 점을 상기시키고, 이러한 양태는 “지속적인 창조를 수반한다”고 지적한다.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태도 변화를 강력히 촉구하는 동시대의 이론은 인간의 신체를 벗어나, 각각의 물질이 지닌 수평적 힘의 관계를 통해 지배적 위계가 아닌 생동하는 코나투스(conatus)의 동일성을 강조한다. 하여 ‘포획’이라는 역설로 그 불가능성을 피력하고, 근대의 수리적 합리와 자연 사이의 대립항을 병치시키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사람과 자연의 관계에 대한 경험적 차원을 이미지의 메타포로 안내하는 박형렬의 작업은 우리의 육체가 지닌 본질적 상태란 자연과의 무한한 상호성을 통해 유지된다는 지속에 대한 제안일 것이다. 땅과 사진 - 신혜영(미술비평)2019 -신혜영(미술비평) -땅과 사진 1960~70년대 서구의 대지미술(land art)이 사진과 함께 미술관으로 진입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대지미술은 당시 미술관의 높은 벽을 스스로 허물며 밖으로 나간 수많은 시도들 중 단연 선두에 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혁신적인 미술 경향이자 동시대미술의 주요 흐름으로 인정받으면서 다시 미술관 안으로 들어와야 했다. 그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사진이었다. 대지미술은 미국이라는 특수한 지리적 요건과 관련된 바가 크다. 그것은 전후 세계 미술 지형에서 패권을 쥐게 된 미국의 추상표현주의에 대한 반발로 등장한 미술 경향 중 하나였고, 일군의 예술가들이 미술관 밖으로 나와 접한 것은 다름 아닌 거대한 미국의 ‘대자연’이었다. 그들은 대자연의 열린 공간으로 예술을 내보냈을 뿐 아니라 이전까지 일종의 경관으로만 묘사되어 온 자연을 자신들의 작품의 일부분으로 끌어들였다. 그러나 거대한 규모의 작업 전체를 일별하거나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감상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사진이나 영상과 같은 기록 매체를 통해 다시 전시장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이는 대지미술뿐 아니라 1960-70년대 새롭게 등장한 퍼포먼스나 개념미술과 같은 여타의 현대미술 역시 유사한 입장으로 일회적으로 끝나버리거나 현장에 참석한 소수로 관객이 한정된다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자연에서 형상을 연구하다 -인간에게 ‘붙들린’ 자연 -매체의 본성을 통한 미학적 유희 역시 외견상 달라 보이는 두 작품이 선후 관계를 이루고 있다. 작가는 특정 지역의 땅에서 간척사업에 사용된 돌들이 중장비의 압력에 의해 각기 다른 형태로 갈라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각각의 돌을 마치 초상사진처럼 촬영하였고, 이 사진 이미지를 토대로 검은색과 흰색 옷을 입은 사람들(performers)에게 명암을 강조해 돌의 ‘틈(crack)’ 형상을 재현하게 한 뒤 다시 그 모습을 사진으로 찍었다. 이러한 일련의 작업들로부터 우리는 작가의 일관된 관심이 여러 양상으로 발현되는 중에 자연스럽게 서로 간섭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진지하고 아름답게 -Land and Photography Let’s think back on the 1960s and 1970s when land art of the West made their way into museums together with photography. Land art was at the forefront of numerous conscious efforts being made at the time to break free from museums walls, but before long received recognition as a revolutionary art movement and a significant trend in contemporary art, making a return back into the museums. Among a series of factors that provided for this development was the role played by photography. The emergence of land art correlates very much with the unique geographical conditions of America. It was one of many movements that began as a protest against abstract expressionism, which had set the stage for America’s dominance of the post-war international art world and what this group of artists encountered outside the museum was the enormous scale of American nature. They not only brought the practice of art out into the open but also incorporated nature—primarily depicted as mere scenery thus far—as their works’ constituents. However, the need to get a good full look at the large-scale works and to reach a wider audience necessitated the intervention of media for documentation such as photography and videography, eventually restoring them back to the exhibition spaces. This, in turn, weaved photography into the context of contemporary art. In this way, there has been a special relationship between the discipline of photography and the development of land art, a genre stemming from America’s natural environment and art world. -Studying Figures within Nature Hyong-Ryol Bak is a visual artist who works with the media of “land” and “photography,” within the particular geographic bounds of the Republic of Korea. To be more precise, the process entails executing temporary alterations to nature, starting from land, then photographing them as the final work. On the surface, it resembles land art presented via photography, but the artist’s focus is not on the act of intervening with nature and more on the photographic image of the temporary modification; his subject is not extensive nature, but coarse and barren land. He has wandered around the country, starting with the entire region around the Namhan River of Chungju, and recently reached a soon-to-be-developed land in the southwestern district of Gyeonggi Province located not far from Seoul. These are sedimentary layers of lands found in Yeongjong Island, Daebu Island, Jeongok Port, Gopori in Hwasung, which were reclaimed in the past but are currently neglected, awaiting redevelopment. The artist enters into these “in-between spaces” set in between before and after the development and performs both big and small intervention and adjustments on them, to capture the resulting appearances with photographs. The work exhibits a quality of impermanence as shown in the artistic intervention on nature, as well as the portrayal of nature awaiting a change in the imminent future, which are features that warrant photographic participation. However, documentation is not the purpose of his photographs, but rather the series of actions or steps leading up to the desired photographic image. -Nature “Captured” by People The simplicity depicted in the picture betrays the difficulty of the process. Starting with searching for an appropriate location, the artist observes the change in the quality of soil influenced by the season and weather, uses a suitable tool to modify the land in the desired shape, and positions the camera in the way he wants to frame the scene, capturing it from an aerial viewpoint. At times, the scale of the work requires him to press the shutter button atop a 20-to-30-meter-tall tower crane and has to go through repeated trial and error in order to get to the intended image. Bak’s works are illustrative of one of the main branches of contemporary photography dealing with the theme of “traces of activity,” for the reasons that a single work of his oeuvre materializes following the demanding process of capturing the image alone without the stages of post-processing on the computer and printing. A notable aspect of this process is the restoration of the altered nature back to its original state. It’s as if he is self-aware that his action of temporarily transforming the surface of the land and taking photographs in a way that accentuates its aesthetic form—inspired by the scenery of development where giant heavy machinery digs up the soil—is just another intervention made on nature based on human need. In this way, repeated questioning towards the relationship between human and nature underlies Bak’s photographs. Can human beings own nature? -Aesthetic Play Attained Through the Essence of the Medium Bak’s works are evocative of not just land art, but performances held within a particular environment or the works by the Mono-ha, exploring the encounter between nature and human beings. He also references specific artworks in many of his works. In those instances, he borrows from major artworks in the history of art but alters their coherence, and the inferior quality of the material and end result creates a comical effect when the works are presented with seemingly-unwarranted seriousness. For example, the photograph of poles stuck on a wide field calls to mind The Lightning Field (1971) by Walter de Maria, but the emphasis of the work is put on playing with perspective by using acrylic poles of varying diameters, or the photograph reminiscent of the wrapped nature by Christo and Jeanne-Claude features holes made around small plants and covering shapes with patterned fabrics. As one can see in these works, enlightening the viewers with the fact that perspective can distort reality or devising a sort of entertainment out of alternating the scales of subjects within the images sharing the same standards are elements that can only be obtained from photography. This is because the world seen through the camera lens cannot equal what we see with our naked eye. The artist has a good command of the “aesthetics of scale,” having spent much time on the reflection and research on the planning of perspective and adjustment of the angle of view as well as the distance with the subject seen through the single eye of the camera. The track made with only 20-to-30-centimeter-long acrylic plate painted in oils transforms into Spiral Jetty (1970) by Robert Smithson and reclaimed land commonly seen in the vicinity of Gyeonggi Province becomes a color-field painting by abstract expressionist painters Mark Rothko and Barnett Newman. -Earnestly and Beautifully Bak adheres to the prevailing language and grammar of the plastic arts within the context of contemporary art, while presenting his reinterpretation of the specific set of circumstances within Korea seen through his unique sense of aesthetics developed over time as an individual born and raised in the land. The artist, viewing nature as something “captured” by people—considering the unmindful acts of digging and damages made premised on the logic of real estate and development—exerts partial changes to the land through temporary involvement, records the scenery with technological medium beginning with photography, and restores it back to its original state, in order to demonstrate a symbolic emancipation of nature from its oppressed state. The series of actions and steps the artist takes for this purpose are marked by an air of seriousness and reverence. If land art emerged out of the trend of art and the natural environment specific to America and contributed to the introduction of photography into museums, Bak’s works are in search for a more refined expression of the photographic medium—already well-established within the art world—to reflect on the constant thoughtless attempts made to exercise power over nature within limited area of land the country provides. In this manner, he continues to expand the domains of visual art unique to the land and photography within Korea. text by Hehyoung Shin 포획, 재전유, 포월로서의 사진 행위 - 김성호(미술평론가)2016 -김성호(미술평론가) 박형렬의 작업은 대략 두 가지 제목 혹은 범주로 전개되어 왔다. 하나는 ‘THE CAPTURED NATURE(2010-2012)’이고, 또 하나는 ‘FIGURE PROJECT(2013- )’이다. 그의 작업에서 이러한 두 범주는 개념적 행위와 사진이라는 장르가 서로 맞물려 있다. 대개 그것은 행위 미술이라는 ‘과정 자체’이지만 언제나 사진이라는 ‘결과’로 남겨진다. 전자의 작업이 자연을 포획하고 구속하여 추출되는 파편적 이미지와 메시지에 관심을 기울인 것이라면, 후자의 것은 인공적 개입을 통해 자연을 재구성하는 다양한 창작 방식을 탐구하는 것이라 하겠다. 두 시리즈의 사진 작업에는 인간과 자연 사이의 경계를 넘나드는 포월(匍越)의 미학이 읽힌다. 때로는 ‘드러냄’으로 때로는 ‘감춤’으로 가시화되는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를 찬찬히 살펴본다. 포획 재전유 나아가 작품 포월 A Photographic Action as Capture, Re-Appropriation, and Crept Transcendence By Kim Sung-ho, Art Critic HyongyolBak’s work has developed into two themes or categories: The captured nature (2010-2012) and The Figure Project (2013- ). His conceptual actions and the genre of photography are interlocked in these two categories. His works are always represented by the “process itself” of performance art but are always left as the “result” of photography. While the former is to take notice of the shards of images and messages extracted through actions of capturing or restraining nature, the latter is to explore ways of reconstructing nature through an artificial intervention. What is discovered in these two series is aesthetics of crept transcendence that goes beyond the boundary between man and nature. This can be visualized at times by “revealing” and others by “concealing.” Capture Art is practice for humans to conceive aesthetic concepts. It is involved in deconstructing the essential character of nature. Photography can also be described as a human action that captures nature. It arbitrarily cuts and extracts it with a square frame and objectifies, restricts, and binds it as an object. A photographic image captured on a flat two-dimensional surface ties up and enslaves reality in three-dimensional space. We need to paradoxically examine Bak’s nature friendly work method that uses the extremely anti-natural medium of photography. His work discloses the hidden essential character of nature with minimum human intervention and reflects on it through art’s effective involvement in nature. This can serve as the foundation for understanding his performative photography. Bak’s first work is to physically capture nature, the subject of his photography. Before taking a picture, he dissolves or separates nature and captures it as “dramatized nature” or “man-made nature.” During this process he discloses aspects that are different from the anti-environmental modeling idioms of land art as seen in works like Double Negative by Michael Heizer who makes a foray into becoming violently involved with nature, destroying and deconstructing it. He intervenes in the most minimal way possible by only removing the surface and exposing its strata rather than occupying too much of the land like Michael Heizer did when he dug out a valley, Christo when he covered thebreathing holes of the land with a curtain, or Walter De Maria when he tried to conquer it by driving a lightning rod deep into the ground. Bak’s action of capturing nature is to give back the breathing holes to the land by peeling away its dried skin and helping the mudflat breathe by removing the sand that was covering it. His practice is nothing but to build “a little home” by intricately weaving thread or making “pretty clothes” for nature. Therefore the “dramatized nature” in his photography can be thought of as nothing more than a game with nature and his “man-made nature” as merely a trifling outgrowth that resulted from both his communion with nature and the considerate care and benevolent attention he paid it. Re-appropriation That’s not true. His "dramatized nature” and “man-made nature” are rather a criticism of uncivilized human deeds. His series mentioned above is a critical view of the climate today in which nature for the public is privatized. That is, his “capturing of nature” that brings about “dramatized nature” and “man-made nature” is not to deconstruct and conquer nature but to suggest critical introspection into nature through the “minimum intervention in nature,” seeking its reconstruction and re-appropriation. “Re-appropriation” is a reconsideration of “appropriation.” In other words, it is to deconstruct all modernist practices and practice appropriation again. The etymological meaning of “appropriation” is “a deliberate act of acquiring something.” It refers to “an act of taking over some cultural capital and making it hostile to its initial owner” in cultural studies. In Bak’s photography this can be thought of as an act of challenging the Creator, the original owner of nature. This is to make a shift from “a challenge to the Creator” to “a defiance against humans.” This is because it conducts a work of re-signification. This appropriates and modifies the context his photographic acts are placed in, as in bricolage. That is, he does not drive his involvement in nature to its deconstruction and conquest but transfers it to a game or critical communication. As this term “re-appropriation” is used to criticize metaphysics, he brings the deconstruction of nature by humans in its original sense to his photographic actions to criticize humanity’s uncivilized conquering of nature, wandering about the edges of “a game with nature” or “communication with nature.” His actions of cutting out the skins of “snowfield,” “land” or “water” in his serialized pieces such as The captured nature and The Figure Project are obviously to capture and plunder nature impudently, but these are converted into some nature-friendly acts to enable nature to breathe through re-appropriation by peeling the thin surfaces of the land away one by one. In The captured nature_Sea#1,2 (2011, 2012) his photographic action to capture “a meditative landscape of nature” with dual thin transparent frames by placing frames or color glass panels on a beach is a practice of his conceptual re-appropriation through which he replaces his photographic act with his communication with nature while criticizing humanity’s conquering of nature. For this, he dresses the beach with his own nature-friendly “clothes.” In The captured nature_Earth#9 (2012) he criticizes humanity’s attempts to conquer the land through a reconstruction and visualization of the Arabic numerals from 0 to 9 to represent theKorean measurement, “one pyeong” (평, 坪) equivalent to 3.3m2. To the artist, a series of his photographic acts to deconstruct and capture nature is an action to propose, practice, and reconstruct nature consistently and a re-appropriation for “a conceptual yet biting criticism” of the deconstruction and dominion over nature. There are instances of re-appropriation in this work that cannot be typed, as in his video work Paper-Tearing (2016). It is like the skins of the strata captured by the artist in The Figure Project_Earth#58 exposing their inner flesh in an unpredictable way like in the results of his “paper tearing.” His critical photographic act can be thought of as a game and a communicative action with nature. Crept Transcendence The Figure Project_Earth is a photo series documenting performances. In this series capturing images from a bird’s-eye view, a performer in a white or black garment slowly creeps over the border of nature made up of extensive white and black clothes covering the land. The trajectory of the performer’s slow movements is recorded in videos and photos, disclosing the trajectory of the performers’ crawl. A non-artificial space relatively uninfluenced by humans is a very ordinary site but soon becomes an artistic space through his “dramatic device.” A point of confrontation or an interface between nature and art is formed here. At a glance this looks like a geometrical abstract painting rendered on the land but it extends or revitalizes the boundary between the natural and artificial with humans in special attire who appear as modeling factors such as points, lines, and planes. This is because performers, who appear in an abstract scene made when man-made clothes occupy a land, shape a multidimensional boundary between nature and art, nature and the arts, black and white, objectivity and non-objectivity, figuration and abstraction, and movement and stillness. A human being expands his or her body from “one border to another,” slowly creeping over the border with the body that belongs to both sides as the body of re-appropriation and bricolage. This seems like the boundaries of a hard-edge painting but soon expands to the space of metaphors that is represented by Deleuzian “pli” with innumerable boundaries. In this sense performers can be defined as assistants who act for Bak’s shamanistic rituals to recover his relationship with nature. His photographic action of practicing reconstruction and re-appropriation is thus no longer the “other’s meditative landscape.” This has turned to both the “other’s and my empirical landscape.” In his work “other and I” is another subject that enables landscape to escape any modernist meditative perception. According to Maurice Merleau-Pontyian account, this has become a landscape as the subject that we talk with together, not the object that is visible through our eyes. That is, this is “a landscape as the de-objectified subject” that shares its body among “man, art, and nature.” Bak’s work is a photographic action made as an “embodied body or other’s and my subject” in a vast field of nature where there is nothing visible. Of course, his work at times seems to be an intentional, unnatural attempt at a social message or an endeavor to bring about the reconstruction of metaphors. Nevertheless, it is amazing that he visualizes the aesthetics of re-appropriation and crept transcendence, the potent power flat, two-dimensional photographs may have through a relatively simple strategy of “making photos.”Figure Project_Statement(2016) -박형렬 Figure Project(2013-)는 아직 사람의 손이 많이 닿지 않은 자연공간에 물리적인 변형을 가하고 변형된 대상을 부감형태로 기록한 작업이다. 작업이 이루어지는 자연공간은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별볼일 없는 지극히 평범한 공간으로, 사람들의 관심에서 대체적으로 벗어나있는 곳이다. 나는 이 공간에 존재하는 자연의 일부에 물리적 실험과 행위를 가하고, 그 과정들을 통해 다양한 시각적 요소들을 만들어낸다. 이때 만들어진 대상들은 촬영 뒤, 없어지는 가변적 풍경이 된다. Figure Project (2013- ) is work that physically transforms untrodden natural space and documents the changes made from an aerial viewpoint. The natural spaces where I create my work are largely ordinary places far from downtown and away from people’s attention. I create a variety of visual elements by applying physical experiments and actions to part of nature in these spaces. The objects created in this process are variable scenes that disappear after being photographed. Figure Project is largely dependent on two methods. Inspired by my doubts about violence dominating humans, The Capture Nature (2010-2012) series features installations in which nature is physically captured and the humans who perform this action. I escape the system made by humanity’s desire to govern nature through actions and persons who try to reconstruct nature, documenting the irregularity arising from this process. I discover and record new possibilities for the relation between man and nature. What’s interesting is that some spaces I have visited for several years look just as they did the first time while others have been completely altered by the addition of sassy buildings or well-appointed parks. There are more spaces that have been altered than ones that remain unchanged. Natural spaces that barely survive and seem insignificant might soon be very rapidly transformed if they meet any economic or social value of our time.-정현(미술비평가/인하대교수) 박형렬의 사진은 인류의 바탕이자 원천인 대지를 기록한다. 그것은 자연에 바치는 헌사이자 문명에 대한 반성처럼 보인다. 이번 전시에 소개된 풍경은 거의 추상에 가깝다. 작가는 대지를 거대한 화면으로 만들어 그 속에서 마치 처녀지를 발견한 탐험가처럼 생경하게 어루만진다. 사진은 이런 낯섦과 기이함을 포착한다. 박형렬의 대지를 향한 시선은 풍경이란 관습을 재해석하면서 동시에 자연과 문명 사이의 갈등을 미묘하게 드러낸다. 부감을 사용했지만 그의 사진은 ‘하늘에서 본 지구’와 같은 감상적인 시선도, 러시아 아방가르드와 같은 절대주의적 시선도 아니다. ‘하늘에서 본 지구’ 방식의 다큐멘터리가 자연과 문명이 교차하는 지구의 삶을 풍요롭게 묘사한다면, 절대주의 미학으로 포착된 문명화된 도시는 감정이 배제된 기하학적 도형들의 구성물이다. 이처럼 사회주의 이데올로기가 재현한 세계에서는 인간의 흔적은 사라지고 그 자리는 기하학적이고 인공적인 것들로 채워진다. 이는 예술가의 시선의 방향과 위치가 곧 세계를 인식하는 시대의 지배적 사상임을 알려준다. 박형렬의 사진 속에는 회화, 조각, 설치, 퍼포먼스, 대지미술, 개념미술 등 다양한 미술의 매체와 방법론이 혼재한다. 초기 사진 프로젝트인 <포획된 자연>(2010-2012)부터 이번 전시 ≪Figure Project≫(2015)까지 그는 자연을 주목하고 있다. 그에게 자연은 주제이자 질문이며 모든 사진의 바탕이자 질료이기도 하다. 미술에서 자연은 다양한 방법으로 다루어져 왔다. 대표적으로 서양의 풍경화, 동양의 산수화를 떠올릴 수 있다. 풍경화의 역사는 길다. 풍경은 단지 자연에 대한 미학적 형식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세상에는 하나의 풍경이 존재하는 게 아니라 문명, 문화, 지식과 경험에 의해 다양한 관점과 방법으로 자연을 인식하는 사상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자연이 곧 풍경이 아니라 시대와 지역에 따라 서로 다른 형태의 풍경이 산출된다. 그러므로 풍경은 인간이 자연을 인식하는 시각적 틀이자 어떤 규범을 의미한다. 즉 풍경이란 인공적으로 구현/재현된 자연에 관한 개념이라 부를 수 있다. 인류사에서 자연은 극복해야 할 대상이자 본받아야 할 존재였고 오늘날에는 인간과 더불어 살아야 할 존중의 대상이 되었다. 서구의 경우, 르네상스 이후부터 풍경은 일정한 규범에 의해 재현되었고 이 같은 풍경의 미학은 여전히 단단한 관습으로 남아있다. 알다시피 당시의 풍경화란 작가의 경험이나 연구를 바탕으로 그려지지 않았다. 관습적 미술에서의 풍경이란 이데아를 대신하기에 회화 속의 자연은 유토피아를 재현한 것이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관습이 된 이상화된 자연의 형상을 벗어나려는 시도가 19세기경에 이르러서야 가능했다는 사실은 풍경이 곧 관념을 대신하고 있음을 반영한다. 미술사에서 풍경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가장 급진적으로 행해진 것은 바로 대지미술의 등장으로 비롯되었다. 1960년대 영미권의 대지미술은 미술관 제도를 거부하려는 움직임이었다. 무엇보다 미술의 만신전이 되어버린 현실을 거절하기 위해 자연을 창작의 매체로 사용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작가들의 태도에는 풍경이라는 하나의 장르를 재해석하려는 의지도 포함되었다. 절대적인 자연을 숭고한 아름다움으로 재현하는 대신 매체로 전환된 자연이라는 개념적 설정은 미술의 오랜 관습을 깨트리려는 저항 정신의 표출이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자연에 대한 인식의 전환은 문명화된 예술과 예술의 질료를 온몸으로 거부하고 있음을 표명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예술을 보존하는 박물관학적 전시 방식의 거절을 통해 미술에 대한 원론적인 변화가 모색되었음을 증명한다. 대지미술과 포토-다큐멘테이션 박형렬은 대지미술에서 많은 영향을 받은 듯하다. 특히 <포획된 자연> 연작은 대지미술의 전형들인 로버트 스미드슨의 <나선형 방파제>(1970), 마이클 하이저의 <이중 부정>(1969), 발터 드 마리아의 장소-특정적 설치 작업을 차용해 풍경의 의미를 재해석하기 시작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1960년대 이후 공간 중심의 시각예술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나타난 다양한 시도는 시간-기반의 예술을 향한 도전이기도 하다. 여기서 사진의 결정적인 역할은 바로 대지미술의 일시성을 기록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포토-다큐멘테이션이 갖는 의미는 실내 전시가 불가능한 대지미술을 보여주기 위한 수단과 전통적인 서사 양식을 벗어나 작가 스스로 자연/풍경을 생성하는 과정을 대중에게 제시한다는 점에 있다. 고유한 사진매체의 가능성이 이처럼 과정의 기록을 기반으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미술비평가 보리스 그로이스는 미술 패러다임이 예술작품에서 예술 다큐멘테이션으로 전환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발터 벤야민을 인용하면서 유일한 예술작품을 전시하는 대신 재생산이 가능한 사진과 텍스트로 만드는 다큐멘테이션을 제시하는 것이야말로 일상에서 실천하는 ‘생정치학(biopolitics)’을 반영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생정치학이란 예술 행위를 인공, 가상을 넘어 또 다른 생명, 삶의 가치를 가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지시한다. 현대미술에서 과정을 기록•전시하는 행위는 주어진 신화적 전형의 바깥에서 예술이 생성되는 과정을 소개하기에 정치학적 함의가 포함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다 박형렬의 작업을 통해 우리는 대지미술의 형식이 어떻게 자연이 풍경의 개념으로 이동하는지를 흥미롭게 관찰할 수 있다. 그의 작업에 자주 등장하는 기하학적인 형태를 만들기 위해 땅을 파고 기둥을 박는 폭력적 행위는 역설적으로 풍경을 만드는 과정이다. 풍경은 자연이 만들어준 선물을 재현하는 게 아니라 자연을 이용해 인공적으로 기획된 자연이다. 풍경은 폭력에 의해 탄생한다 해도 지나친 과장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주의 깊게 보아야 할 부분은 과거 대지미술가들의 이러한 폭력이 관료화된 미술 제도에 대한 반성으로 비롯되었고, 더 나아가 이를 극복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자연을 이용해 일시적인 설치와 거대한 규모의 프로젝트를 실행했다는 점이다. 이는 곧 문명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해석될 수도 있고 더 나아가 새로운 신화를 만들겠다는 야심도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다. 이에 반해 박형렬이 대지미술의 표상을 선택한 이유는 오히려 동시대 한국인이 갖는 ‘땅’에 대한 관습에서 시작된다. 대지미술의 형식을 차용한 ’포획된 자연 Earth#9’(2012)는 10평 크기의 사각형 틀 안에 0부터 9까지의 숫자를 새겨 넣어 한국 사회에 팽배한 땅에 대한 맹목적 욕망을 풍자한다. 이후 2013년의 설치 작업은 <포획된 자연>의 이면에 존재하던 암시적인 질문을 본격적으로 탐구한다. 그는 레지던시 입주 기간 중 우연히 발견한 버려진 화분에 관심을 갖는다. 오늘날 화분은 자연의 일부라기보다 인공적으로 배양된 사회문화적 산물에 가깝다. 단순히 실내를 꾸미기 위한 장식품부터 자연의 일부이자 생명을 기르는 기쁨까지. 화분이라는 존재는 인간의 또 다른 욕망을 보여주는 상징일 것이다. 버려진 화분을 모아 레지던시 주차장 가운데로 모아 실제로 장소를 사용할 수 없게 만든 <조용한 시위>(2013)는 ‘포획된 자연’이 어떻게 소비되고 파괴되는지를 선언하는 일종의 상황주의적 사보타주로 ≪Figure Project≫ (2013-2015)로 이행하는 과도기적 작업으로 볼 수 있다. 영도의 영토 The Territory of the Zero Degree By Hyun Jung, Art Critic & Inha University Assistant Professor Hyongryol Bak’s photographs are a record of the land as the foundation and source of mankind. They seem to be a eulogy to nature and a reflection on civilization. Landscapes on show at this exhibition are almost abstract. The artist turns pictures of land into an enormous scene and strangely touches it as if an explorer discovers virgin soil. His photographs capture unfamiliarity and idiosyncrasy. Bak’s view of the land is either a novel reinterpretation of landscape or a subtle revelation of conflicts between nature and civilization. Employing a bird’s-eye view, his photographs appear neither maudlin like “earth seen from the sky” nor absolutist like Russian avant-garde art. While a documentary filmed from a bird’s-eye view depicts life on earth where civilizations intersect with nature as something enriched, a civilized city captured by absolutist aesthetics is a thing made up of geometrical figures where are feelings excluded. As such, traces of humanity are replaced with geometrical, artificial things in a world manipulated by socialist ideology. This announces that the direction and location of an artist’s eyes can be a dominant ideology through which to perceive the world. Bak’s photographs are a mixture of diverse artistic media and methodologies, such as painting, sculpture, installation, performance, land art, and conceptual art. In his oeuvre from his early photo project The captured nature (2010-2012) to his recent series The Figure Project (2015) he has paid attention to nature. To the artist, nature is either the theme and question or the ground and material for all photos.Nature has been addressed in a lot of different ways. Typical examples are Western and Eastern landscape paintings. This genre of painting has a long history. A landscape is not merely the aesthetic form of nature; it is the thought to perceive nature from diverse perspectives and in various ways based on civilization, culture, knowledge, and experience. That is to say, landscapes of different types are produced in accordance with age and area. Thus, a landscape is a visual frame in which humans perceive nature, as well as some norms. In other words, a landscape can be referred to as the concept of nature artificially realized and represented. In human history, nature has been the object to be overcome and emulated as well as an object to be respected. Since the Renaissance in the West, landscapes were represented by a certain standard, and the aesthetics of landscapes still survive. As is widely known, landscape paintings at that time were not painted based on any artist’s experience and research. As landscape in conventional art is a substitute of Idea, nature in painting is a representation of a utopia. The fact that an attempt to escape the form of idealized nature could be made around the 19th century reflects landscape's replacement of an idea. In art history, our perception of landscape underwent a rapid change due to the emergence of land art. Western land art in the 1960s was a movement that rejected the museum institution. Artists began using nature itself as a medium. These artists showed their will to reinterpret landscape painting as a genre. The establishment of this concept, nature converted to a medium instead of representing absolute nature as sublime beauty, is an expression of a spirit of resistance to break down long-standing conventions in art. This shift in the perception of nature denotes those artists’ rejection of civilized art and artistic material, moreover proving that they pursued some elemental change in art through their refusal of museological exhibition. Land Art and Photo-documentation The Territory of the Zero Degree -황록주(미술평론가, 경기도미술관 학예연구사) 40여년 전, 리처드 롱이라는 영국의 한 예술가는 척박한 고원 하나를 넘어가면서 발길에 채이던 돌덩이들을 덤덤히 한 줄로 늘어놓았다. 아무렇게나, 그저 바람과 비에 씻기고 흐른 대로 늘어서 있던 그 돌은 그렇게 한 사람의 발걸음 뒤를 따라 간단한 질서를 얻게 된다. 작가는 본인이 남긴 별 것도 아닌 흔적을 역시나 무덤덤하게 사진으로 담아낸다. 예술가가 지나간 흔적. 폭력도 강제도 그 어떤 불편함도 없이, 다만 지나갔노라 하는 편지 한 장처럼 남아 있는 제 걸음의 흔적. 그것은 사는 동안 우리가 과연 무엇을, 어떻게 하고 살아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일이었다. 살고 난 뒤에도 자연에게 해하는 일 없이, 지나고 난 뒤에도 황폐해지는 일 없이 그저 그 자연과 더불어 한 생을 사는 일 말이다. 땅 위에 남겨진 그 흔적들을 우리는 이름하여 ‘대지미술’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오늘날, 여기 박형렬이라는 또 한 명의 예술가가 있다. 지난 선배들의 걸음처럼, 그 또한 무던히 자연의 한 장면을 바꾼다. 그러나 이번에는 조금 더 많은 생각이 들어가 있다. 이를 테면 이런 식이다. 아라비아 숫자를 1평짜리 면적을 가진 크기로 땅 위에 쌓아 새긴다. 조금 더 적극적인 흔적이다. 수로 점철된 세상을 향해 사람이 자연을 얼마만큼 전유할 수 있는가 되묻는 일이 더해지는 것이다. 거대한 크기로, 막강한 힘으로 가끔 그 대상을 정복한 것만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하지만, 언젠가는 그 누군가에게 간단히 속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일깨우는 것, 잠시 가두어졌다가도 이내 회복하는 것이 자연이라는 것을 나지막이 일러준다. 그가 포획한 자연은 바로 그 착각이 다만 착각일 뿐이라는 사실을 일깨우는 잠시 동안의 이벤트일 뿐이다.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것이 남아있던가를 살피기 어려울 만큼 사라지고 말 것이다. 작가는 그 우매함을 깨치는 순간에 번쩍 플래시를 터뜨리듯 사진 한 장을 남긴다. 크레인 위로 올라가, 전능한 신의 눈으로, 사람이 벌인 일을 살피는 것이다. 그 어떤 실용적인 목표도 없이 벌인 그의 작업이 결국 지난 날, 대지미술처럼, 한 장의 사진으로 우리를 깨운다. 작가는 2013년에 경기창작센터에 입주해 있다. 무수히 많은 사람의 얼굴을 찍다가 어느 날 그 사람들의 숲 너머에서 드러나 보이는 것을 찍어야겠다 마음 먹게 된 작가는, 간결하고, 유머러스하며, 뒤통수를 얻어맞고도 기분이 좋아지게 만들 만큼 영리한 작품으로 관객을 흥분시킨다. 올 한해 대부도에서 펼쳐질 그의 프로젝트가 기대되는 것은 아마도 그렇게 또 한 번 기분 좋게 뒤통수를 얻어맞을 일이 기다려지기 때문일 것이다. 요즘은 그렇게 대놓고 야단쳐줄 사람이 없으니까 말이다. 박형렬의 자연, 생명을 포획하다-백곤(미학) / Bak Hyong Ryol’s Nature, Capturing Life (2013) -백곤(미학) 우리는 “자연스럽다”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그런데 이 말을 계속 반복해서 읽다보면 말이 어색해지고 의미의 혼동이 옴을 느낀다. 무엇이 자연스러운 것인가? “자연스럽다”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들리려면 우선 “자연”을 자연으로 보아야 한다. 그런 다음 자연과 같다는 느낌의 “스럽다”라는 접미사를 붙여야 한다. 별 의미가 없는 것 같은 이러한 의미 분석은 단순히 단어를 풀어내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자연을 바라보는 인간의 시각에 대한 중요한 물음을 던지는 일이다. “자연을 자연으로 본다”는 동어반복에 대해 어떻게 대답할 수 있는가? 자연은 자연 그대로의 의미로 사용될 때 그 참뜻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인간적 필요에 의해 구성된 자연을 많이 접한다. 그렇기에 최초의 “자연”에 대한 동경과 염원을 기리는 말로 “자연스럽다”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최초의 “자연”의 의미에 대해 얼마만큼 알고 있는가? 근대적 사유의 주체로 물든 인간들의 전유물인 이성은 이 “자연”을 주체의 대척점인 하나의 대상으로 규정한다. 데카르트가 그러했듯이 이 자연은 균질한 공간으로 구성된 단지 연장의 사물인 것이다. 그리고 영혼을 가진 인간의 정신은 이 자연을 조정할 수 있다고 확신하였다. 자연은 이제 주체에 의해 특정 목적으로 구성되거나 무목적의 목적에 의해 주체의 사유속에서 개별적인 의미로 수용된다. 이는 바로 자연이 인간에 의해 “포획”되었음을 의미하는 말이다. 이 “포획”의 단어는 작가 박형렬의 작업 전반의 걸친 예술적 주제이기도 하다. 박형렬은 <포획된 자연>이라는 일련의 시리즈를 통해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 말한다. 특히 그는 인간이 자연을 사냥하듯 포획하는 과정에 생기는 많은 사회적, 문화적 문제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의 작업은 자연환경에서 실제 설치 및 퍼포먼스로 행해진다. 자연에 대한 그의 일련의 모든 행위들은 사진이미지로 포획된다. 박형렬에게 “포획”은 인간이 자연에 가하는 폭력적 행위들을 고발하는 하나의 이미지로 귀결된다. 1. 포획의 행위, 대상이 된 자연 2. 의식의 소유물, 포획된 자연 3. 생명과 해방을 위한 포획 - Paik, Gon Aesthetics We often use the word, ‘natural’. If repetitively reading this word, we feel some awkwardness and confusion in its meaning. What is natural? We first of all see ‘nature’ here as nature, and then add the suffix ‘-al’. This analysis of meaning may seem of little significance, but it is not simply describing a word: it is posing a very important question concerning nature and our view of nature. What can we say about the tautology, ‘seeing nature as nature?’ 1. The act of capturing, nature as the object of this action 2. Possessions of consciousness, captured nature Let us again go back to the definition of ‘natural’. What is ‘natural’? Nature today is exposed to artificial environments and worlds where we cannot exist naturally. Bak sees that no nature is left untouched by human hands and desire, and nature is always an economical, political scapegoat. The purpose of his artistic, cultural action is to recover the original meaning of nature. It means he has to present a site where nature lives its own life as the subject of seasonal change, not an objectified physical nature. This is to be liberated from the dominance of human’s suppressive ideologies hidden behind human consciousness. This is to see a human being as life itself, escaping from material, capital, and economical value. From which will we be liberated? Humans have consistently explored ways for emancipations for themselves and nature. What is waiting for us in the end of suchemancipation? Which way should we explore after being free? Liberation does not simply mean escape. This question is again about humans and nature. Liberation means asking about ‘being alive’ or ‘life’. Bak narrates about the naturalness of life through his work. When he used the term ‘capturing’, it means capturing living beings. The Captured Nature thus means capturing nature with life. His exhaustive work (executed in the actual natural environment), toward nature captured by human’s subjective consciousness, comments on nature’s aliveness and its emancipation questioning human reasoning toward nature. “What is naturalness?” As mentioned above, any answer to this question is possible when ‘seeing nature as nature’. We can say nature is ‘natural’ when wesee nature as nature itself with life, nature dominated by human consciousness, and nature not trampled by the power of capital. We humans can also be humans when the term ‘humanistic’ sounds ‘natural’. Bak’s art is thus for humans, not only for nature. 시간을 읽는 사진, 인간을 읽는 시간-정일주(월간퍼블릭아트 편집장)(2013) -정일주(월간퍼블릭아트 편집장) 눈길을 사로잡다. 비단 사진 뿐 아니라 작품을 설명할 때 쓰는 표현 중 가장 상급에 해당한다. 완벽히 연출된 화면이나 색감, 호기심을 자극하는 스토리와 선명한 감각이 엿보일 때 쓰는 문장이다. 박형렬 작품의 첫인상은 스칸디나비아호수처럼 조금 차갑다. 단순한 화면과 절제된 디테일에서 약간의 긴장감도 느껴진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다르다. 일단 모던한 사진에서 느껴지는 건조함과 어색함이 없다. 시간을 가지고 볼수록 적당히 인간적이며 유머러스하다. 그는 이번 타이틀이 설명하듯 박형렬의 사진엔 자연이 등장한다. 허나 그것은 맑고 푸르며 아름다운 것 과는 차이가 있다. 그는 바닷가 모래를 블록으로 쌓아 층을 만들거나 회오리 모양의 원반으로 매우 이질적인 길을 내고, 집채만한 흙 공을 만들어 자연 공간에 침투시킨다. 등장인물들은 참을 수 없이 진지한 표정으로 역할을 수행하는데, 그것은 생산적이거나 자기주도적인 모습은 아니다. 이는 순전히, 완성될 장면을 간파한 작가의, 철저한 계산으로 연출된 자세 혹은 표정인 것이다. 작가 스스로 본인의 작품을 “비효율적이고 어떤 면에서는 반자본주의적” 이라 피력하듯 자연에 완성해 놓은 인공적 형태와 인물 모두 일견 덧없어 보이지만, 그것은 고스란히 조형성을 어필하고 서사성을 드러낸다. 작가는 완전히 독창적인 무대를 만들고 새로운 인물들을 포함시킴으로써 자기화된 화면을 완성하는 것이다. 작품 제작 과정은 이렇다. 우선 이야기를 짠다. 그리고 실행되는 그의 작업은 대지미술과 다르지 않다. 자연에 인공물을 덧대거나 덜어냄으로써 배경을 만들고, 앞서 설명했듯 그 속에 인물들을 배치한다. 그의 작품에서 인물은 결코 필수요소는 아니다. 다만 스토리를 더 풍성하게 만드는, 마치 다큐멘터리의 내레이션과 같은 것이다. 감미로운 목소리로 감성을 자극하거나 샤프한 음성으로 다큐의 긴장감을 더하듯, 박형렬은 여자, 남자 혹은 어떤 성별로 구분되지 않는(혹은 구분할 필요 없는)인물을 띄엄띄엄 배치함으로써 작품의 강약을 조절한다. 이후 촬영에 돌입한다.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방식으로 기후와 상황의 미세한 컨디션을 모두 감내하며 그는 사진을 찍고 화면으로 만들어 낸다. 자신의 능력과 노력에 늘 야박한 작가는, 쉽게 갈수 있는 모든 것을 지양하며 좀더 복잡하고 까다로운 방법들을 따른다. 이런 고집이 작품의 밀도를 높이고 창의력을 고취시키는 양분인 셈이다. 촬영 후 모든 설치는 파기되고, 자연은 원상 복구된다. 그가 ‘반물질적 작업’ 이라 설명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연에 대한 이야기는 수도 없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비슷한 내러티브를 가지고, 저마다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다르게 보여주려는 이들이 바로 작가다. 박형렬은 위트나 풍자야 말로 작가의 큰 무기임을 인식하고 분명한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이제 도입을 지나 전개를 펼치는 작가의 단계 중간에 있다. 공교롭게, 최근 몇 차례 박형렬의 작품을 논의하는 공식적인 자리에 참여했다. 아쉬웠던 점은, 말끔하게 정돈된 화면만으론 작가가 치밀하게 구성한 프로세스와 처절한 노고가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걸 간파하는 고수들도 없지 않았지만, 그저 트렌디한 ‘요즘사진’ 이라 여기는 이들이 많았다. 눈길을 사로잡는데 성공하고도 그 안에 엉킨 서사를 전부 어필하지 않는 그의 사진은 앞으로 박형렬이 풀어야 할 숙제다.‘작업에 대한 효율성’ 이란 주제로 늘 자기분석하는 박형렬, 그때마다 원초적으로 내재된 무식함과 고집을 발동시켜 무던히땅을 파고 덮고 다듬는 그의 열정을 응원한다. The captured nature statement(2013) -박형렬 2010년부터 작업을 진행한 ‘The captured nature(포획된 자연)’은 자연에 대한 개인적인 애착에서 비롯되었으며, 현 사회 속에서 자연은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가에 관한 탐구과정을 담고 있다. 사회 속에서 관찰한 자연의 모습은 인간의 이용목적에 의해 이리저리 옮겨지거나 답답한 대리석 안에 갇히게 되는 등 아주 피곤한 인생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였고, 여기에서 자연 그대로의 편안함은 느낄 수 없었다. 이를 바탕으로 인간과 자연을 사냥꾼과 사냥감으로 설정하고, 인간들이 다양한 덫(장치)들을 이용해 자연을 사냥(포획)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이러한 과정을 사진으로 기록한 ‘The captured nature’는 과연 자연은 인간의 마음대로 소유와 이용의 대상이 될 수 있는지에 관한 물음을 던지고 있다. 작업의 초기에는 비닐봉지와 끈, 스티커와 천 등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상적인 소재를 활용해 다양한 포획의 방법과 형태를 연구했다. 최근에는 인간의 이성적 판단과 활동이 내재된 숫자와 도형, 색의 대비와 이분법 등의 요소들을 은유적으로 차용해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신을 중심으로 세상을 사유했던 중세 철학은 데카르트의 주체철학을 통해 근대로 넘어가게 되었다. 그 이후에 흄과 칸트 등 근대 철학자들은 인간의 이성적인 능력이 신의 자리를 대신해 진리의 영역까지 도달할 수 있는지를 검증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자연은 인간과 분리되어 인간의 지배를 받아야 하는 객체로써 인식되면서 이른바 기계론적 자연관이 성립되었다. 오늘날까지도 막대한 영향력을 끼친 기계론적 자연관은 인간의 이성적 판단이 야만적이고 잔인한 비극을 초래할 수 있다는 사실이 명백하게 증명된 현시점에서도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처럼 개인적으로 체험한 자연과 사회에 내재된 자연관을 견주며 품게 된 의문은 결과적으로 ‘자연을 포획한다’는 터무니없는 상황을 연출하는 작업으로 이미지화 되었다. 간혹 황당하고 어이없게 느껴질 수 있는 행위들을 재현하며 애초에 ‘자연’과 ‘포획’이라는 단어가 서로 연결될 수 없다는 사실을 스스로 깨닫게 되었다. 더불어 우리 인간들에 의해 마치 사냥감처럼 생명을 위협받고 존재를 상실하는 자연의 현실을 직시하게 되었다. 여기에 우리가 자연과 어떤 관계 속에서 살고 있는지를 고민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백곤(모란미술관 학예사) 1. 이번 야외미술프로젝트 2. 선생님께서 모란미술관의 개활지 자연공간에서 작업을 하시면서 가장 중점을 두신 곳은 어떤 지점입니까? 어려운 점은 없으셨는지요? 다른 야외환경과 다른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3. 이번 전시를 준비하시면서 여름의 특성상 비, 바람의 영향을 많이 받으셨을 것 같습니다. 비, 바람과 같은 자연현상이 선생님의 작품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요? 또한 작업을 하시면서 기상에 대한 부분을 고려하시는지요? 4. 모란미술관 야외미술프로젝트 "nature"는 자연-환경 이해에 초점을 맞춘 전시입니다. 선생님께서 평상시 작품 활동을 하시면서 “자연”을 어떻게 생각하고 이해하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5. 자연과 문화(예술작품)는 서로 대립되는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선생님의 작품이 문화적 행위라고 했을 때, 대자연의 환경 속에 작품을 가져다 놓았다고 했을 때(혹은 설치되었다고 했을 때) 작품의 의미는 어떻게 달라진다고 생각하시는지요? 6. 자연환경의 특성상 작품파손의 염려가 있을 수 있습니다. 야외미술 전시를 하시면서 작품이 파손된다면 어떻게 하실 것인지요? 작품파손도 야외미술 전시의 일환으로 생각하시는지요? 아니면 언제나 처음의 작품과 같이 복구가 되는 것이 중요하신 것인지 궁금합니다. 7. 이번 야외미술프로젝트 “nature'에 참여하신 소감과 관객들이 선생님의 작품을 어떻게 감상하면 좋을지 감상의 포인트를 말씀해 주십시오. 8. 선생님께서는 자연을 ‘포획한다’라는 개념으로 작업을 하십니다. 정확히 무엇을 포획한다는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9. 이번 작품이 땅의 3.3m²(1평)에 대한 작업인데, 자세히 어떤 의미가 담겨져 있는지요? - 작업을 진행하면서 한 가지의 방법이 아닌 매번 다른 방법들을 보여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다른 식으로 땅을 파게 되면 모를까, 비슷한 형태의 작업으로는 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그리고 이번 프로젝트를 다른 식으로 표현해 본다면, 동일한 흙의 양으로 크기가 다른 덩어리들을 만들어 땅위에 놓이게 하는 것을 생각해봅니다. 그럼 자연스럽게 크기가 커지는 덩어리들은 속빈 강정들이 되겠죠. -이혜린(월간퍼블릭아트 기자) 다음 물음에 답해보자. 베르사유 궁의 정원은 자연인가, 아닌가? 인위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분재를 자연으로 보는 이에겐 긍정이겠지만, ‘사람의 힘이 더해지지 아니하고 세상에 스스로 존재하는 상태’라는 사전적 의미와 비교한다면 그것은 자연이 아니다. 자연과 인공의 기준이 분명치 않은 간극에서 우리는 아파트 단지 내에 정돈된 뜰을, 도심 속에 위치한 공원을 두고 자연이라 부르며 살아간다. 우리는 의지와는 상관없이, 때로는 의도적으로 기준과 취향에 맞게 자연을 훼손하고 정렬하고, 옮기며 폭력을 휘두른다. 이런 현대인의 행태에 날카로운 비판을 가하는 박형렬은 “인간은 자연을 소유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리곤 동시대에 녹아든, 천연덕스러운 현대인의 속성에 착안해 작업을 진행한다. 자연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해 왔다. 아니, 정정한다. 자연이 있었기에 인간은 존재할 수 있었다. 명백한 진리임에도 쉽게 잊는 사실이다. 자연이란 주객은 전도된 지 오래다. 우리는 이를 소유물로, 편의와 취향에 따라 이용하는 대상으로만 바라볼 뿐이다. 이와 같은 개념은 자연을 스스로 성장과 발생을 거듭하는 하나의 생명체로 파악하는 유기적 자연과는 대조적으로 자연의 운동과 변화를 기계적 인과관계로 파악한다는 기계론적 자연관의 결과에서 비롯된 결과이다. 자연관에 대한 정당화는 자연에 대한 무분별한 개발과 파괴를 불러왔고, 그것에서 시작한 현상의 복합성을 무시함으로써 자연의 본래 가치를 가볍게 여기는 문제까지 일으켰다. 이에 대한 의문이 확산하였고, 현대화가 진행할수록 반대 여론과 반발은 더욱 커지고 있다.박형렬 역시 최근작 이처럼 그의 작업은 사진이란 매체에 작가의 철학과 독창성을 결합하고, 그 위에 작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면서 재창조된다. 이는 재현의 매체인, 순간을 기록하고, 보존하려는 열망에서 탄생한 사진의 특성을 한 단계 넘어선 일이다. 단순한 보존이란 사진의 의미를 넘어 주관적인 시선을 개입할 때, 오롯한 작가의 메시지를 전하는 매체로서 전이되는 힘을 믿기 때문이다. 이는 초기작업인 박형렬이 다루는 소재(주변인, 한순간의 유행, 자연)는 ‘자신이 직면하고 접하는 일상’이라는 공통점을 갖는다. 나를 포함한 평범한 인물이나 주제군을 통해 작가는 우리가 모두 한번쯤 생각해 볼 문제를 이끌어낸다. 때로는 무겁고, 때로는 유쾌한 제스처로 사회적인 이슈를 상기시키기에 각각의 시리즈는 다른 주제를 이야기하면서도 공통의 연결고리를 갖는다. 작가는 그러한 과정을 통해 ‘당연히 여기는 것’의 문제를 제기하고, 이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담아낸다. The captured nature statement(2011) -박형렬 드라마 속 비극의 주인공처럼 모든 불행이 마치 내 것인 것처럼 행동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난 하루가 멀다고 기차를 타고 버스를 타고 마음 닿는 곳에 발을 디뎠다. 마치 두서없는 글처럼. 얼마의 시간이 지난 뒤에 난 내 발이 숲 속을 지나 산 정상을 내딛고 있었음을 보게 되었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은 산책이다. 자연에 내보이는 관심과 강박적인 집착은 어쩌면 위안을 받고 있다고 느낀 그 순간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르겠다. 이런 내 시선은 자연스레 사회 안에서 바라보게 되었고 그 안에서 풀과 나무, 바다, 바위 같은 자연이라 불리는 하나하나의 것들이 내가 있는 이곳에선 온전한 편안함을 유지할 수 없음을 볼 수 있었다. 자연이 자연으로서 우리 곁에 있기에는 불가능한 것인가.? 불행하게도 나조차도 욕망의 그늘에 산다. 성공하고 싶은 욕망, 갖고 싶은 욕망, 빼앗고 싶은 욕망 등 수많은 욕망의 끈을 놓지 못하고 살고 있다. 더욱이 이런 욕망을 부추기는 이곳에선 아주 조금의 틈만 보이면 이리저리 휘젓고 들어와 회색으로 물들인다. 자연은 그 회색 빛깔에 따라 옮겨지기도 하고 끌려가기도 하고 무엇으로 탈바꿈되기도 하면서 아주 피곤한 자신의 삶을 살 뿐이다. 생각해 보건대, 우린 단 한 번도 자연에게 당신 생각을 물어본 적이 없다. 그래도 되는지를. 이런 시각으로 진행되는 ‘The captured nature' 작업은 자연을 포획하고 이용하기 위한 여러 다양한 장치들과 그 안에서 행위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기록해 나감으로써, 오늘날 현대인들과 자연의 이기적이고 지배적인 관계에 대해 의심해보고자 한다. 또한, 과연 자연이란 것이 우리 인간들에 의해 소유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인지를 고민해보고자 한다. -Hyongryol Bak Once I felt so unhappy, like a protagonist in a tragedy. I traveled places, wherever my mind roamed, daily by train or bus. After a time I was on top of a mountain after passing through a forest. A walk is now what I like most. My concern with and obsession for nature probably began at the moment I felt I was consoled by nature. My gaze remains confined to society. I realize each element of nature such as plants, trees, rocks, and the sea cannot be in comfort within society. Isn’t it possible for nature to be with us as nature itself? Unhappily I have always been in the shade of desire. I cannot give up desire for success, desire for possessions, desire for plundering. Nature is tinged with gray where such desire exists. Nature lives a tired life, moving, led, and turned by the gray. We have never asked nature what it thinks and if it is alright. Reflecting this view, Captured nature questions contemporary people’s dominant, selfish connections with nature by recording devices that capture and exploit nature and those involved. I seriously wonder if nature can be possessed by humans.박형렬의 "포획된 자연"을 소개하며 / Introducing 'Captured Nature' by Hyongryol Bak(2011) -존 고토(영국더비대학교 교수) "자연을 포획하는 것”(to capture nature)은 사진에서 흔히 사용되는 상투적인 말인 “카메라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The camera never lies)라는 표현과 동일하다. 이 두 표현은 사진의 특질인 모방에 근거해 세계와 사진적 과정 사이의 특수한 관계(a privileged relationship)에 대한 믿음을 공유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계는 헨리 폭스 탈보트의 상업적으로 출판된 최초의 사진집인 “자연의 연필”(1846)(The Pencil of Nature)에 묘사되어 있다. 자연을 포획한다는 것은 박형렬이 그의 풍자적인 사진에서 보여주듯 터무니없는 제안(an absurd proposition)이다. 그러나 이러한 부조리함은 인간과 자연 중 어디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인가? 박형렬은 인간의 자만심이 바로 그 범인(the culprit)이라고 단정짓는다. 그는 우리가 자연으로부터 멀어졌으며 이는 매우 심각한 결과를 초래했음을 암시한다. 해변의 왕좌에 앉아 밀려드는 파도에 물러가라고 명령했던 크누트 대왕(995-1035) (great king Cnut)의 이야기가 영국에 전해진다. 바다는 그의 명령에 무관심했으며 왕은 물에 젖고 말았다! 지혜로운 왕의 몸짓은 자연이나 신에 비해 자신의 권력은 지극히 제한적인 것임을 아첨을 일삼는 신하들에게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포획한다는 것은 (사냥감에) 물래 접근하기, (사냥감) 뒤쫓기, 그리고 (사냥감을 향해 총) 발사하기 등과 같이 사진가들이 자주 사용하는 사냥의 은유(hunting metaphor)이다. 박형렬 공연단(troupe)의 멋진 사냥꾼(stylish hunters)들은 서로 합심해서 사냥감을 추적하고 철저히 침묵을 유지하며 즉흥적으로 고안한 덫을 주의 깊게 설치한다. 자연은 그들에게 하나의 상품이고 그들은 종종 주차장으로 자신들이 구입한 물품들을 힘들게 끌고 가는 프레임을 벗어난(out-of-frame) 쇼핑몰의 쇼핑객처럼 보인다. 쇼핑처럼 그는 자연에 대한 약탈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연중 이루어지고 있음을 암시한다. 그러나 그의 사진들은 조화로운 공간을 보여준다. 풍경 속에 놓인 인물, 이미지의 틀, 제시되는 작품의 규모 등 여러 요소들은 자연 자체를 통제하기 보단 이미지에 대한 주의 깊은 통제로부터 비롯된 미적 질서(an aesthetic order)를 제시한다. 그리고 이는 박형렬의 일련의 우아한 작품들(elegant series)로부터 얻을 수 있는 교훈이기도 하다. 이는 자연에 대한 존경이며 인간의 특별한 재능을 고취하는 것이다. -John Goto (Professor, Derby of University, U.K) To ‘capture nature’ is a photographic cliché on a par with ‘the camera never lies’. They both share a belief in a privileged relationship between the world and the photographic process, based on photography’s mimetic qualities. Indeed, such a relationship was announced in the title of Henry Fox Talbot’s ‘The Pencil of Nature’ (1846), which was the first photographically illustrated book to be commercially published. To ‘capture nature’ is an absurd proposition as Hyongryol Bak demonstrates in his satirical tableaux. But where does the absurdity lie, with us or with nature? Hyongryol Bak suggests human hubris is the culprit. He suggests that we have become ever more removed from nature, and hints at consequences that may yet prove momentous for humankind. In Britain we have a story about the great Norse king Cnut (995–1035), who sitting on his throne by the seashore, ordered the incoming tide to turn back. The sea was indifferent to his command and he was soaked! The wise king’s gesture was to show his obsequious courtier the limits of his power in the face of nature and God. To ‘capture’ is a hunting metaphor frequently used by photographers alongside ‘stalking’, ‘tracking’ and ‘shooting’. Hyongryol Bak’s troupe of stylish hunters work in unison to stalk their prey, carefully setting improvised traps whilst maintaining complete silence. Nature has for them become a commodity and they often look like shoppers hauling their purchases towards an out-of-frame mall car park. Like shopping, he suggests, plundering nature is an all-year-round activity, come snow or shine. And yet these are not pictures without space and harmony. The placement of figures in the landscape, the framing of the image, the scale of presentation all suggest an aesthetic order derived from the careful control of the image rather than an attempt to control nature itself. And maybe this is one of the lessons we can draw from Hyongryol Bak’s elegant series – respect that which belongs to nature, and encourage in humankind its own special talents. Otherwise, we are likely to get wet feet!박형렬의 사진, 뷰파인더를 통해 사진의 또 다른 길을 찾기 / Bak Hyong-ryol’s Photography, Finding a New Method of Photography through the Viewfinder(2011) - 박정구(스페이스씨 큐레이터) 사진이 생겨난 이후 “회화는 죽었다.”고들 했지만 여전히 건재하다. 회화를 닮고자 했던 사진도 그 매체적 특성으로 예술의 지위를 획득한 지 오래다. 그러한 점에서 사진이 회화를, 회화가 사진을 닮으려는 존재의 문제를 건 경쟁은 이미 많은 부분 그 의미를 잃었다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 사진과 회화는 지금도 서로가 지니지 못한 상대의 고유한 특성을 수용함으로써 스스로의 영역과 예술적 표현의 가능성을 넓히기에 애를 쓰고 있다. 생각해볼 때, 그렇게 한 쪽이 가지지 못한 것을 상대로부터 빌려오는 방식이 있다면, 스스로 지닌 배타적 특성을 십분 발휘함으로써 차별성과 효율성을 발휘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 두 방법 사이의 길항이 바로 사진 탄생 이후 회화와 사진이 각기 걸어온 길이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통상적으로 예술이 걸어온 내적이고 자발적인 전개의 여정이라고 부르는 것이라 할 것이다. 박형렬은 사진이라는 매체에 회화나 설치 등 여타 장르의 것으로 여겨지던 속성들을 끌어들여 기록성과 같은 사진매체의 근본적 특성을 벗어나는 작업을 시도하고 있다. 지극히 짧은 시간에 포착된 이미지라는 사진이 지닌 배타적 특성의 장 속에 회화나 그 밖의 장르가 지닌 특장을 끌어들임으로써, 현장의 기록으로서의 사진보다 회화와 같은 주제가 부여되고 (서사적)장면이 재현된 사진을 추구한다. 그의 사진을 한 마디로 이야기하자면 우선 ‘연출사진’이다. 근래에 그는 무심하게 이루어지는 ‘인간의 자연 사용’을 주제로 작업하고 있다. ‘자연 사용’은 자연 파괴나 환경 파괴 같은 말로 이야기하면 분명할 것을 에두르는 것이 아니라, 그에 덧붙여 일방적으로 이루어지는 인간의 자연 활용을 포괄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니까 자연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일방적으로 이루어지는 인간의 이익 획득 행위를 말한다 할 것이다. 그래서 그의 화면은 ‘자연풍경 속에서 자연물을 획득하고 있는 이러저러한 사람들의 연출된 모습’으로 일반화할 수 있다. 사진을 위해 그는 주제에 적합한 자연 속 공간을 찾는다. 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과정이다. 주제와 촬영에 적합한 공간이 결정되면, 그 공간과 지형에 맞추어 연출될 장면에 필요한 소품들을 마련하고 참여할 인원을 구한다. 촬영을 위해서는 이리저리 소품들을 설치해보고 인원들을 배치하는 긴 준비와 인내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곤 비로소 촬영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의 사진에서 사람들은 작가에 의해 고안된 도구나 장비로 나무를, 바람을, 물을, 바위를 포획하고 있다. 일면 야외에서 벌어진 퍼포먼스의 한 장면처럼 보이기도 하는 화면에는, 설정이 존재하며 그에 의해 배치된 인물과 소품이 존재하고 구도와 색채가 존재한다. 그렇게 설정되고 연출된 행위의 스틸 컷이다. 그래서, 설치가 장소적 제약에 따른 일회적 속성을 지닌 것이며, 퍼포먼스 또한 기록으로밖에 남을 수 없는 시간의 제약을 갖지만, 그의 사진에서 다양한 행위를 보여주는 사람들과 거기에 놓인 소품들은 마치 회화의 등장인물이나 배경의 물건들처럼 작품을 구성하는 주체로서 작품과 함께 하는 지속적인 생명력을 얻는 것이다. 그의 사진은 연출된 등장인물들의 포즈와 극적으로 강조된 빛으로 알려진 카라바치오의 그림을 떠올리게 한다. 그의 그림이 연출된 자세와 빛으로 극적인 순간을 포착함으로써 현실감과 보는 이의 임장감을 극대화하는 것이었다면, 박형렬의 사진은 연출된 장면의 스틸컷을 통해 보는 이로 하여금 그 공간과 등장인물, 그리고 그들의 행위에 대해 상상하고 추측하며 나아가 사고하는 여지를 제공하고자 한다.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관한 사유이다. 그는 이러한 자신의 방식을 “풀과 나무, 바다, 바위 같은 자연이라 불리는 하나하나의 것들이 내가 있는 이곳에선 온전한 편안함을 유지할 수 없음”에 대해 자신의 작품을 통해 반성적 태도를 가져보고자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필요에 의해 무단히 맺어지는 자연과의 관계를 되돌아보자는 것이다. 그는 그렇게 현장고발과 같은 충격적이거나 극단적인 노출에 의한 참여적 태도가 아닌, 그 한 부분에 불과한 인간이 행하는 자연의 무분별한 유린을 드러낸다. 그러한 점에서, 보는 이를 향한 그의 태도는 노골적이지도 않으며, 자신의 해답 내려 강요하는 방식 또한 아니다. 다만, 그의 사진이 보는 이 각자가 그러한 문제에 대해 돌아보고 자신의 답을 내리는 유연한 하나의 장으로서 역할하기를 기대한다. 단 한 컷의 사진을 위해(비록 그가 택한 일이기는 하지만), 각지를 돌아다니며 장소를 찾고, 소품을 제작하여 설치하고, 등장인물을 등장시키는 그의 작업과정은 몹시 비효율적인 것이라고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러한 작업과정을 통해 우리가 미처 눈치 채지 못했던 사진의 숨겨진 땅과 그 땅을 통해 여타 장르와 소통하는 길을 조금씩 찾아내고 있는 것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사진이 기성의 영역을 넘어 조형적으로 발언의 장을 확장해가는 것은, 21세기를 맞은 오늘, 사진 내적으로도 중요한 일이겠지만, 사진 외적으로도 의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으며, 그것은 모두가 바라마지 않는 일일 것이기 때문이다. -Park jung-ku(Curator of Space Ssee) After the birth of photography, it was said “Painting is dead.”, yet it still flourishes. Photography trying to resemble painting obtained the status of art long ago. Photography has tried to resemble painting, and vice versa. Any competition between painting and photography has been meaningless. The two genres have strived to broaden each sphere and the possibilities of artistic expression by embracing the other’s unique qualities. One genre may borrow things it does not have from the others, or it may become distinctive by fully exploiting its exclusive traits. After the birth of photography, the two genres took their own paths, competing and collaborating with each other. This can also be called the internal, spontaneous journey of art. Bak Hyong-ryol attempts to escape from the fundamental traits of photography by embracing attributes of other genres such as painting and installation. He lends painterly qualities to his photographs by introducing the features of other fields like painting to the arena of exclusive photographic qualities, pursuing photographs representing narrative scenes. In short his works are staged photographs. Bak recently started working with the theme of human ‘exploitation of nature’. This expression, ‘the exploitation of nature by humans’ is equivalent to the destruction of nature and the environment, but refers to the one-sided use of nature by humans. That is, this means we use nature for our own interests without considering the intentions of nature. Bak’s photographs are thus directed scenes featuring people acquiring natural objects in landscapes. In his photographs people capture trees, wind, water, and rocks with devices and tools the artist invented. The situations in his photographs look like scenes form a performance. Each scene is set up by the artist, as he arranges the figures and props, and conceives the composition and colors. Although an installation has a one-off quality and is limited by space, and a performance is confined to time, the people and props in his works have a continuous life force, like the figures and objects in a painting. Bak’s photographs are reminiscent of Michelangelo da Caravaggio’s paintings known for the figures’ directed poses and dramatically emphasized light. While Caravaggio’s paintings maximize a sense of reality and immediacy by capturing a dramatic moment with directed postures and light, Bak’s photographs are intended to offer room for viewers to imagine, guess, and meditate on his photographic space, figures, and their actions. This is contemplation on the relationship between man and nature. Bak says his way is to have a reflective attitude through his work. “Each natural object such as grass, trees, sea, and rocks cannot be in comfort in my place”. This means he looks back on a relationship with nature made by necessity. He reveals the reckless destruction of nature by humans not in a participatory attitude but through shocking, extreme accusation and exposure. In this sense his attitude toward viewers is neither explicit nor coercive. Bak simply hopes his photography can assume the role of a forum where each viewer reflects on such a problem and arrives at their own answer. His process of travelling to many places, looking for proper space, making and setting props, and selecting characters for a piece of work is very ineffective, even though he has chosen the work for himself. Through this process however, he discovers a new territory of photography and ways for communication with other genres. This extension of photography in the 21st century is internally meaningful, and externally significant for photography itself.- 김숙경/ 전시기획 한국의 자연관 자연과의 조화(調和)와 삶의 치유 - Kim, Sook-Kyung is a curator of Kunstdoc gallery A Korean way of viewing nature While Western art theory has been developed through three distinct phases of creation (imitation, imagination, and intuition) Eastern art theory is chiefly concerned with the expression of harmony, with the guiding principle being to ‘follow the harmony found in nature’. The significance within harmony of ‘getting along with one another’ becomes intensified, reaching the more profound level of ‘embracing the other’. The tendency towards naturalistic harmony can be seen to take different shapes depending on the specific time and period, but it is clear that it has played a key role as mediator, both in the past and in the present, when it comes to the different ideas and aesthetics being used by artists. As a cultural notion, our approach to nature can be distinguished between Eastern and Western perspectives on art, not just in classical genres such as music, literature, and visual art, but also within the realm of the ‘total work of art’ (Gesamtkunstwerk), in multimedia or cross-disciplinary art. As a cultural exchange between Korea and France, a variety of interpretations of nature are presented by the artists in this exhibition. Using a range of media – including painting, photography, installation and new media work – seven French artists and ten Korean artists present their personal perspectives of nature. As one of the genres within Korean traditional art that has the overarching concept of naturalism at its heart, painting is based around the way that an artist perceives nature. Rather than realistic depictions of nature, the focus is on observations that represent an ‘inner landscape’, an image of the artist’s physiological and emotional relationship with a natural setting. Korean landscape painting is one of the most significant genres encompassing the traditional and modern ideas in visual art. Cho, Inho’s approach is based around actual landscapes in the Korean natural environment, working primarily with Korean ink. Cho’s work is developed using a particular method that involves presenting mountains and rivers from multiple points of view, resulting in extreme qualities of dynamism, and replacing a transcendental notion of time notion with an intense visual energy. In Cho’s work mountains appear as nothing short of ‘mobile’ entities, reflecting living nature. In Kang, Boo un’s paintings the vital energy of nature operates as a mental construct that embodies the quotidian qualities of life. Kang uses ink-and-wash painting to evoke the feelings he encountered within the natural landscapes of Jeju Island, an island to the south of the Korean peninsula. Kang’s paintings arise his intention to represent the tranquil energy that he found in his encounters with the natural environment. This energy is visualized through powerful images made of ink-and-wash, made with an economy of language that reflects the natural innocence and healthy energy found within each site. As a crucial component at the essence of Korean traditional painting, nature acts as a touchstone for a number of contemporary artists seeking to develop personal styles and their own aesthetic attitude. Among the most significant concerns for artists today are issues related to a contemporary life defined by an absurd and deceptive reality that has been generated by the political and capital mechanisms that surround us. Emerging artists such as Bin, U-Hyeok, Jeong ho-sang and Shir, Ghyo seek to find within nature the essential forms of thought that reflect the inner landscapes of the human psyche. Examining the conflicts found in human relationships and the dominant logics of power, and then connecting them to natural sites or natural logic and causality, Bin and Jeong explore ways of viewing the alienation and contradictions that are part of our lives, Rather than simply approaching it as a subject matter, the natural landscape found in their paintings takes the significance of the invisible abstract space where cognition takes place. There can be a therapeutic quality to our experiences of nature, bringing a balance back to our lives. This idea takes a significant place within Shir’s sound-installation work, where human pulses are converted into the five notes that define Korean traditional music. Using the medium of photography, Kim, Nam Soo and Bak, Hyoungryol address the values that human’s find within their lives and their historical constructs, considering human desire and the qualities that are inherent within modern society. Documenting a series of performances carried out in natural sites, Bak uses the engaging qualities of live art to demonstrate the fluid ways in which nature enters the everyday, and the ways in which he has developed an understanding with his surroundings when he encounters nature. In Kim’s work we see dolmen – the traditional Korean structure for a tomb – juxtaposed with metropolitan cityscapes, and here photography’s illusions of realism create a dramatic heightening of human history’s precarious balance between the natural and the man-made. It could be said that the strong contrast between images and light herald humanity’s fate to return to nature, as well as the truths of an urban civilization built by society’s subjects. The aesthetic concepts and qualities found in Kim, Juyon, Kim, Soonim, and Cha, Ki-Youl’s naturalistic installations clearly reflect the tendencies for Korean and other Eastern artists to interpret the reciprocal relationship between nature and civilization. Their views of the world, based around nature’s vital energy and the cycle of life, each have distinctively different aesthetic qualities, yet in ecological and organic terms, none of them go against nature. Kim, Soonim selects sites in nature as experiential spaces to reflect on our memories and recall times gone by; in Kim, Juyon’s installations plants are cultivated in somewhat unexpected spaces to draw attention to civilized ways of life and the significance of human existence; while Cha‘s work is suggestive of how an artist might turn objects gathered from nature into a visual languages of their own. The works of these artists draw our attention to their perspectives on society and their abilities to look to the future, dedicated as they are to expanding the boundaries of the art institution and its cultural sphere. Simply put, their works suggest that, even in our modern civilized society, the genuine beliefs among everyday people are in unison with the notions of harmony inherent in nature. Nature serves as a tool that helps us become aware of the conflicts in our lives, to reflect society’s consciousness of the materialistic culture that is born from capital and political power. |